詩,畵,音

그 빈자리 - 유하

찔레언니 차명주 2009. 4. 26. 19:54

                          

                                         행복한 나무 2005 차명주


        그 빈자리 - 유하


        미류나무 앙상한 가지 끝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그 자리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문득 방울새 앉았던 빈 자리가
        우주의 전부를 밝힐 듯
        눈부시게 환합니다

        실은, 지극한 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려온
        미류나무 가지의 마음과
        단 한 번 내려앉을 그 지극함의 자리를 찾아
        전 생애의 숲을 날아온 방울새의 마음이
        한데 포개져
        저물지 않는 한낮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미세한 떨림을 가진
        미류나무 가지 하나 있어
        어느 흐린 날, 그대 홀연히 앉았다 날아갔습니다
        그대 앉았던 빈 자리
        이제 기다림도 슬픔도 없습니다
        다만 명상처럼 환하고 환할 뿐입니다
        먼 훗날 내 몸 사라진 뒤에도
        그 빈 자리, 그대 앉았던 환한 기억으로
        저 홀로 세상의 한낮을 이루겠지요




                         音: 빛으로 다가온 사랑 - 박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