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畵,音

당신이라는 제국/이병률

찔레언니 차명주 2010. 4. 27. 13:33

 

   

 

         

 

 

 

  

당신이라는 제국

 

                                          이병률

 

 

     이 계절 몇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

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듣기를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

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리가 누가 가는 소리만 같다 종일

슬픔으로 흙은 곱고 중력은 햇빛을 받겠지만

남쪽으로서른세 걸음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