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 안주
얼마전 우연히 비굴레시피라는 시를 읽었다.
비굴함 철철 넘치는 내 사랑 이야기 같아서리 가슴 저며 가며 읽었다.
그런데..사실 내 비굴은 도처에 도사린다.
예를 들어보자,,
간밤에 잠을 설쳤다.오늘 아침 조카놈이랑 빡센 베드민턴을 쳤고 헬스장도 가고 목탕에서 온 몸 히야시 시켜서 화실에 왔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잠을 자고 싶었다..
임시방편으로 생각 난 거이가..막걸리..
백주 대낮부터 막걸리를 사 오는데 아래층 분식집 아즘니께서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세상에서 가장 맛 없는 분식집이다.
분식집엔 순대도 있고,오뎅도 있고,떡복기도 있다.이를테면 모든게 안주거리다.
취미반 여인들은 이것도 저것도 김밥도 모든게 맛 없다고 다른데서 사 오는데
난 그러질 못한다,까만 비닐 봉다리 들고 오는 나를 보면 뭔가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이 비굴함.
그런데 이를 어쩌나...막걸리 병 든 나를 분식집 아줌니께서 미소 지으며 바라 본다.
애써 고개 돌리고 현관을 향해 돌진하다,내 발이 저절로 움찔거리며 분식집으로 돌아선거다.
아주머니...떡볶이 2천원어치만...
아...........내가 미쳤지..찰나의 순간을 내 발걸음이 방해를 하다니..
난,,지금 세상에서 가장 맛 없는 떡볶이를 안주삼아 생탁을 마신다.
비굴 레시피 / 안현미
재료
비굴 24개 / 대파 1대 / 마늘 4 알
눈물 1큰술 / 미증유의 시간 24h
만드는 법
1. 비굴을 흐르는 물에 얼른 흔들어 씻어낸다.
2. 찌그러진 냄비에 대파, 마늘, 눈물,
- 미증유의 시간을 붓고 팔팔 끓인다.
3. 비굴이 끓어서 국물에 비굴 맛이 우러나고
- 비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먹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비굴을 잔굴, 석화, 홍굴, 보살굴, 석사처럼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굴의 한 종류로 읽고 싶다
생각컨대 한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그러니까 내일 당도할 오늘도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
팔팔 끓인 뼈 없는 마음과 몸인
비굴을 당신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Regresso - B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