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히피 정옥이

찔레언니 차명주 2011. 10. 20. 11:07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 문구를 보면 내친구 정옥이 깨알같은 글자가 생각난다.

80년도 재수 하던 시절 학원에서 만나 서로 첫눈에 반했던 친구,,

내가 좋아라하던 작가 이상을 그녀도 좋아한다고 했다.

내 모든 공책마다  첫장에 그녀가 적었던 글,,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덩치가 크고 대범한 정옥이의 별명은 히피였다.

남포동 구제품 옷가게에서만 옷을 샀고 제법 멋진 옷들을 잘도 추려오던 내친구 히피 ,

옷 욕심이 남달랐던 그녀는 나 없을때 몰래 내 방의 옷까지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그녀 글자는 엄청 작아서 깨알만 했다.

오히려 소심하고 말수 적었던 내 글자는 너무 커서 좁게 줄그어진 공책이  불편했으니.

 

나는 그 히피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온전히 비웠었다.

그녀의 이상형이 바로 내 이상형이었고,

그녀의 비판이 바로 내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웃을때 나도 따라 웃었고

그녀가 우울할때 나도 함께 우울했다.

그리고 그녀의 미래가 곧 내 미래이기도 했다.

정옥이는 진정 나만의 히피였다.

 

부전시장 가판대에 메리아쓰를 팔던 가난한 홀어머니와 딸,

그 초라한 모녀관계의 정옥이는 노상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내가 없어도 내 방에서 끄적인 낙서 남겨두고 간 그녀는 나보다 더 간절히 날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여대에 들어간 그녀가 보고싶어 찾아갔다가 함께 수업도 빼먹고 디제이가 있던 음악다방에서 마냥 보내던 시간,

때론 내 학교에 불쑥 찾아와선 나와 함께 우리둘만의 그 추억의 대신동 갈채다방으로 갔었다.

시적 감성이 뇌의 전부를 차지하던 그녀에게 통계학 수업이란 외계인과 마주한 대화였을것이다.

결국 자퇴를 하고 몇년후 다시  다른대학 영문과를 들어갔으나,

겨우 한학기를 끝으로 사회로 돌아갔다..

홍콩에서 배 들어오면,,,조카 히피를 책임 지겠다던 삼촌은 결국 첫등록금 이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또 3년,,연락이 끊긴 어느날 찾아온 정옥이,

너무 달라진 모습과 그녀의 예상치 못한 삶이 나를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명영아~나도 그림 그린다 "

정옥이는 내가 다녔던 대신동 바로 그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신화실)

내가 샀던48색 파스텔을 그녀도 샀고,

내가 쓰던 똑같은 크로키북이 그녀에게 있었고

그리고 나처럼 담배를 피웠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그녀가 세 얻은 작업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

망미동 어느 부잣집 커다란 차고였다.(당시 그동네 거의 모든 차고가 가난한 작가들의 "터" 였다)

장판을 깔았고 집주인에게 얻은 소파를 들이고 길에 버려진 앉은뱅이 탁자를 주어다놓고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지 사실 내 그림은 별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추연근 교수님 추천으로 갑자기 첫 취직을 하게 된 내가 몇달 비웠던 작업실에 오랜만에 가보니

내 그림 주변은 온통 물이 뿌려져 있었고 내 캔버스 전체에 곰팡이가 피었더라,,

난 그녀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곰팡이 핀 캔버스 세개는 칼로 그어 찢어버리고 내 짐을 몽땅 싸들고 와버렸다,그리고 또다시 몇년 서로를 잊었다.

3년간의 백수 생활을 접고 88 올림픽 개최하던날,,내 첫 가게 피노키오 미술학원을 오픈했다.

작은 미술학원에 살림방이 두개나 딸린 건물,,막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대학동기들이 와서 취했고,또 몇은 자고 갔다.

그리고 어느날엔 다시 정옥이도 다녀갔는데,,,,그애 눈빛이 이상하더라니.

그때의  정옥이,,,이상한 약에 노상 취해 잠만 자던 히피..

일주일 넘게 내 방에서 잠만 자면서 가끔 나를 죽이고 싶다고도 했다.

내일아침이면 넌 이세상에 없을꺼야,,밤에 너를 죽일거야,,

그리고 벽을 보면서 큰소리로 울부짖었다.세현씨..자기를 버린 세현이란 남자에 대한 원망을,,

(우리학교  대학원장 김00교수님의 외아들 세혔씨...신파쪼 드라마로 해석하자면 서로 전혀 격에 맞지 않는다....였다.)

옆가게 선아,은영이엄마가 달려와서 무슨 일 있냐고 걱정했다..

지금은 아니라고,,,하지만 깊은밤 내가 소리치면 달려 와 달라고 부탁은 했다.

결국 일주일 되던날 그녀 엄마에게 정옥이가 이상하다고 전화를 했고, 엄마는 우리정옥이가 왜~?

딸의 병이 깊어진것을 엄마는 제일 친한 친구에게 조차 숨기고 싶으셨을거다.

처방 받은 약이 다 떨어지고서야 히피는  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나는 히피를 본 적이 없다.

 

7,8년이 지나고 1996년 초,,내가 지리산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더니 정옥이가 받더라.

그사이 결혼을 했지만,,지금은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나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목소리가 나즈막하니 우울했다.

그리고 히피와는 영 이별했다.

 

삼십년도 더 전의 일기장을 보니 정옥이가 생각났다.

십대 후반,20대 초,내 전부였던 히피..하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나,,

그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 무엇이었을수도 있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나보다 더 높이 날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정옥이를 만날수 있다면,,,.하지만 썩 내키진 않는다,,왠지모를 부담스러움이  크니까..

어쩌면 나에게서 그 시절 순수가 사라진 탓인지듛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애 첫사랑 히피 정옥이..

지금, 크게 날아 올랐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30년도 넘은 일기장을 읽다가 그녀를 기억한다네 ..

박제가 된 천재...이루지 못할 꿈을 미리 예언한 그녀의 꿈..

아마  일찌감치 그 슬픔을 예감 한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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