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26 연천 숭의전 나들이
어수정, 고려 왕건이 마셨다는 유명한 샘물이라는데 근처에서 물통을 팔지 않을까 싶어 둘러보니 왠지 춥게 느껴지는 가게가 샘물 바로 길 건너에 있다.물통을 사려고 가게문을 열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팔리지 않은 라면과 질소 충전재로빵빵한 여러종류의 과자 봉투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고 한쪽 구석엔 몇 개의 물통이 팔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세요~아무도 안계세요~
말이 채 끝나지 않은 동시에 어떤 우물거림이 안쪽에서 들려왔다. 그러니까 "방문을...주세요" 라는 확실치 않은 소리.
오래전 창호지를 발랐을 격자무늬 미닫이 문은 아래쪽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방 안이 훤히 보였는데 자잘한 꽃무의가 요란스런 이불이 보였다. 순간 어떤 기미를 느낀 나는 미닫이 방문을 열었는데 제법 커다란 덩치의 노인이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얼마나 오래 누워 있었을까. 오랜세월 햇볕을 못 쬔 얼굴은 투명하도록 창백했으나 기골은 장대한 노인이었다.
방문 앞에 선 나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게 조금 힘겨워 보였는데 노인의 얼굴에서 젊은날의 아름다움이 순간 환하게 스쳤다. 한 시절 풍류를 제법 즐겼을지도 모를 얼굴이었다.
내가 사려던 물통을 높이 치켜 들고 이거 얼마예요 라고 물었으나 노인은 중짜 크기냐고 되려 내게 묻는다.
큰 건 얼마고 작은 건 얼마냐고 했더니 작은건 4천원,큰 건 4500원 이라고 대답하는데 방문을 열고 가까이서 들은 목소리는 제법 힘차고 또렸했다. 돈은 어디 둘까요 물으니 방문앞을 보란다.
나처럼 방문을 열고 노인의 지시대로 얌전하게 돈을 두고 간 손님들이 많았던가 방바닥엔 지폐 몇 장과 그 옆 돈통에는 동전이 종류별로 가득했다.나는 오천원을 내고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 나오며 큰 소리로,동전 하나를 챙겼으며 방바닥에 있던 몇장의 지페는 돈통에 넣아두었다고 괜히 노인을 안심 시켰다.
어수정의 물맛은 달았다.
어수정 앞으로 나 있는 비교적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가 숭의전을 둘러 보았고,발 아래 도도하게 검푸를 임진강을 바라 보는데 오라버니가 흘렸을 땀방울이 저 강물에 씻겼을까 아무튼 무지막지 힘겨웠던 군복무를 바로 저기서 했단다.
모래를 퍼내서 걸러낸 강돌은 초소를 짓고 막사를 짓는데 여름 가을 계절 없이 장병들 몫이었다고 강 아래를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40여년 전 복무했던 임진강변을 차로 달리며 감회가 남달랐던 오라버니는 참담 했을법한 군복무 시절이 긴 세월 잊혀지지도 않았던가 근처 참외밭 이야기며 군대 대추나무 이야기에 어쩌면 그리움 넘치도록 신명을 내서 이야기를 하시더라,
간간히 대포 총구가 살짝 보이는 온통 군부대 천지인 마을과 부대 가까이 있던 밥집에서 콩비지와 부대찌개를 늦은 점심으로 시키면서 올케 언니와 막걸리를 나누어 먹었는데 집으로 오는길 까무룩 졸음에 겨운 나는 잠이 달아나도록 차창을 한번씩 열어 주었다.
차지않은 봄바람이었다.
올케언니
올케 언니와 나,,
포실한 모래밭에서 냉이와 쑥을 한웅큼 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