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이 온다. 180916

찔레언니 차명주 2018. 9. 16. 22:35

 

오후 세시 이른 퇴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성급히 술상을 차리고

안주로 새송이 버섯을 볶으면서 괜히 눈에 띤 계피가루를 한 꼬집 넣었으나 기름대신 두른 버터향이 더 강했다.

술을 마시며 폰에 저장되어 내겐 음악이 되어버린 음성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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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헤이리를 돌아 올 때 은행잎은 어느새 노란빛을 띄기 시작했는데 마치 엊그제인양 봄이 오던 길목, 새순 돋아나는 은행잎을 보고 나는 얼마나 설레었던가를 기억했다.

비로소 펼쳐질 환하고 찬란한 봄날만 일년내내 지속되리라 꿈꾸는 나는 철부지 아이였다.

무섭도록 추웠던 지난 겨울 내 안에 따뜻한 촛불 하나 지펴준 조곤조곤 다정했던 서풍은 한겨울에도 이미 내게 불어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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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 흔들리는 바람에도 온 몸으로 즐거워하느라 가을이 오는걸 미처 몰랐네.

그 바람이 흔들고간 꽃 진 자리에 흰 서리 무심하게 내리는 이른저녁의 땅거미도 지난여름 꽃자리를 눈치채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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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잔을 마신다.

그러다가 또 유튜브에 저장해논 흑백 영상 하나를 본다.

이미륵.

그의 순정의 생을 보면서 사무치는 그리움의 기록이 마치 내것인양 가슴 싸아하니 갑자기 세상이 온통 고요해진다.

나는 그의 책 압록강은 흐른다를 안읽으면 고교 졸업자격을 안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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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

과거이면서도 현재인 사랑.

그 사랑이 머무는 이순간까지 내 시간은 무던히도 분주하였고 간혹 넘치도록 게을렀다.

다만 정성을 다한 내모습이 지극히도 처량하였고 때론 새색씨처럼 이쁘기도 했다.

헤이리는 언제나 신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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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글에 대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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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가 고프다.

이 글을 쓰는 중간..아니 이 술을 마시는사이 잠시 욕실에 들어가 구멍 숭숭한 미용 돌멩이로 발뒤꿈치 각질을 갈아내었고, 다시 한 문장을 지어내고는 어제 도착한 갓 볶은 원두를 갈아 짙은 향의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아쉬웠던 술잔을 채우기 위해 술병을 들고 오다가 이젤에 발가락이 채여 아야~아야 방바닥을 두번 굴렀다.눈물도 찔끔.

마지막으로 과한 술을 마신 내 몸을 걱정하느라 홍삼액기스 하나를 뜯어 쭉쭉 빨아댕겼으니 고요한 와중에 나는 바쁘고도 슬프다.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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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학 4학년 때 동래산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