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찔레언니 차명주 그림이야기
詩,畵,音

기다리기, 아니 안 기다리기 /윤지영

by 찔레언니 차명주 2007. 10. 10.

 

                          기다리기, 아니 안 기다리기

                                                                윤 지 영

 

 

                    아마 그 남자가 구름이었겠지.2005 차명주

 

 



너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너를 기다린 게 아니었나 보다.

너를 위해
마음 속 깊이 박힌 유리조각을 골라내고
작은 씨앗 하나 심지 않았으니
나는 너를 기다린 게 아니었나 보다.
너를 생각하며 물 한 번 주지 않고
싹이 돋아나나 지켜보지도 않고
그 씨앗이 피워낸 넓은 그늘 아래
네가 앉을 의자 하나 마련하지 않았으니
너를 기다린다고는 했지만
굵고 실한 가지마다 노란 등을 걸어 놓지도 않았으니
나는 너를 기다린 게 아니었나 보다

네가 온다고 자랑하고, 네가 온다고 외출도 하지 않고, 네가 오나
보려고 창문을 열어놓고, 큰 길이 보이게 활짝 열어놓고, 네
발소리를 들으려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사실은 너를 기다린 게 아니었나 보다.
가끔 딴 곳을 바라보고
가끔 문이 열려 있다는 걸 잊기도 하고
가끔은 네가 온다는 것조차 잊기도 하고

너를 기다린다고는 했지만, 지금 문 밖에는 너무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그냥 지고 있다. 너를 기다린다고는 했지만.





Pascal Comelade - Ball de gegants

'詩,畵,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고정희  (0) 2007.10.20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0) 2007.10.20
부석사 무량수/정일근  (0) 2007.09.17
낙화유수/ 함성호  (0) 2007.09.12
달빛 안부/강태규  (0) 2007.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