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짐을 꾸려 떠나는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앞집 여인과 7층 여인. 작은 배낭과 함께 내 감청색 캐리어를 보고는 이게 여행 떠나는 포옴이냐고 물었다. 최소한으로 꾸렸는데도 여행내내 넘치도록 많았다. 3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내 가방에 담겨온 낯선 물건은 모로코 염색공장 앞의 어린 소년에게 산 미니 구두고리인데 이번 여행 통틀어 유일한 선물이고 흔적이다. 단돈 1유로.
그런데 적당히 입고 버릴 옷들은 적당한 이유를 들어 결국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하물며 오랜시간 마음에 품었던 그리움이야 어찌 쉬이 버려질리가 있겠는가.
모두들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기념으로 가져왔으나 나는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한 풍경을 그대로 내 눈에 담아왔다. 지금도 정확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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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벌여 놓고도 엉터리 화가는 그저 떠나야겠다는 제 욕심 뿐이었다.이를 어쩌랴.
모로코는 내 기대 이상의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지만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날까지 진행중이던 서울의 내 전시는 아무런 재미도 못보고 끝이 났다. 장사가 좀 되어야 신이 났을텐데 말이다.
스페인 첫 날 말라가의 늦은 밤거리를 싸돌아 다닐 때는 눈을 감고 걸었다. 모든게 귀찮고 그저 팍 쓰러져 자고 싶었다.
실패한 전시회에서 소심한 내 마음이 작용했으리라.
결국 다음 날 몸져 누운채 알함브라는 영원히 나를 외면했고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호텔에서 오직 잠만 자고 싶었으나 비싼 여행에 뻘짓거리한단 흉잡힐까봐 정말 눈 뜬 시체처럼 걸어다녔다 .매일저녁 혼자 마시는 한 잔의 맥주만이 오직 유일한 내 에너지원이었다.
스페인 여정의 생각지도 못했던 마지막 이틀은 내 시름에 겨웠던 지난 며칠간의 억지 여행객에게는 크나큰 선물이었다.
톨레도, 그리고 세고비아.
그리고 또 하나를 꼽으라면 몬세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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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짧지 않은 여정을 보내면서 지난날 내 방탕했던 섭생이 후회 되었고 이제 내가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걸 알게 해주었다.
매일 먹던 막걸리도 줄이고 빈 속의 모닝 커피도 식후로 바꿔야겠다고.
여행중 끊었던 담배도 몇 개 피웠네.
톨레도에서 일곱 분의 일행이 맥주와 빠에야를 먹는데 나는 화장실에 가서 맹물까지 다 올려내고서야 몸의 평화를 얻었다.
투어버스에 올라타서 장윤영작가에게 비닐봉투 좀 달라고 말했는데 차마 구토물 용도라고 말을 못했는데 다행히도 버스에서는 무사했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
매일 새 밥을 안치고 씩씩해져야 하기에 건강해야만 한다.
내일은 이부자리를 세탁해서 뽀송뽀송하게 해놓고 김치를 두가지 담을것. 집청소를 해놓고 31일은 엄마를 모셔올것.(쓰고 보니 효녀 같은데 절대 아님)
인천공항에 도착, 서울 갤러리 쿱에 들러 20호 석 점을 챙기고 겨우 두정거장 거리인 고속터미널까지 택시를 탔는데 요금이 10100원, 젠장이로세.
부산행 고속버스를 타고 낙동강 휴게소에 내리니 끈끈한 습기가 온 몸에 감긴다. 내겐 올해 처음 느끼는 여름이다.
당분간 바쁘고 어수선 할 것 같아 여행기 마무리는 부산행 고속버스 안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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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리운 모로코의 보석 사하라.
아.....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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