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삼층석탑.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만난것이 1993년 쯤 이다.
동생 친구가 운전기사를 자처했고 도시락으로 김밥을 가득 싸서 동생과 집을 나섰다.
유홍준씨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라는 글에 감명 받았지만 내가 그토록 감동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들판 한가운데 늠름하게 우뚝 선 그 남자는 어떤 세월에도 그저 제 자리를 지켜온 듬직한 맏이였고 믿음직한 지아비같아 기대어 살면 한 세월 든든 할 것만 같았다.
아무런 기교없이 우람한 석탑의 단정함은 삼십대 초반의 나에겐 그저 최고의 남성상이었고 경외감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어제 석굴암 본존불을 뵙고 내려와 다시 만난 감은사지 삼층석탑.
젊은 날 내가 그렇게 흠모했던 그 사내는 어느새 노쇠하여 온갖 풍상을 온몸에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서있더라. 그저 우러러만 보이던 사내의 몸에 난 생채기들이 이제서야 보이고 한시절 쩌렁쩌렁 호령했을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유채꽃 화려한 들판을 그저 고요히 바라보는 촌로의 따스함같은 애잔함이 보이더라. 가난으로 비 새는 지붕을 메꾸지는 못해도 자손대대로 이어온 귀족의 품위를 지키려는 자존심 강한 촌로처럼 말이다.
나는 그 사내를 예전처럼 오래 쳐다보지 못했다.
안쓰러웠다.
어쩌면 내가 나이들어 가면서 느끼는 의기소침함을 세상 만물에 투영시키는건지도 모르지.
유마거사가 그랬단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그런데 나는 세상을 내 중심으로만 바라보니 모든것이 늙고 처연해 보인다.
그래서 어제의 감은사지삼층석탑은 애잔함이 하나 더해져서 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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